창립3주년을 지나 헤븐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으며


2015.09.19.

 [글쓴이: 헤븐교회 설립자 정원]


몇 주 전, 나는 헤븐 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하고 성도들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2년 전에 원흥 지구에 땅을 구입하고, 1년 전에 헤븐 교회 신축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제 공사를 거의 다 마쳤습니다. 이제는 입당예배를 코앞에 둔 상태입니다. 아마 이러한 시점에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는 경우는 드믈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역자들이 교회의 외적인 성장,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을 시작한지 이제 3년 반이 되었지만.. 그리고 그 동안 성도들과 많은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황홀한 행복감.. 그리움들을 갖게 되었지만.. 왠지 사역적인 면에서 나에게 담임 목사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한 면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글을 쓰는 것이 맞지, 수많은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은 기질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몹시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여전히 유지될 헤븐 스타일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헤븐의 특성입니다.


1. 헤븐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인위적인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예배당 건축을 다 마쳤습니다. 헤븐 성도들 중에 건축헌금을 하라는 설교나 권면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강대상에서나 어디에서도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수 년 사역하면서 헌금하라는 이야기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며, 신앙의 본질은 주님을 알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못해서 마음이 주눅이 들면 어쩌나.. 그것만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건축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면, 마치기까지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하면 그만이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무리하게 억지로 할 바에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나는 감동 없이 함부로 헌금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을 뿐입니다. 헌금을 많이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헌금을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헤븐의 성도들은 가난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헌금은 계속 채워졌습니다. 한 번도 시공사에 기성금이 밀린 적이 없었습니다.

헤븐의 헌금은 대부분 무명헌금입니다. 자기 이름을 써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건축헌금도 3천만 원, 5천만 원, 1억 원씩.. 한 사람들이 있지만 누군지는 전혀 모릅니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알 방법도 없습니다. 이렇게.. 헌신을 해도 자신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어떤 칭찬이나 보상도 없지만 사람들은 은밀히 교회를 돕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것이 헤븐 스타일입니다.


2. 헤븐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어떠한 강요도 없습니다.

헤븐에는 일체의 강요가 없습니다. 헤븐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요시여기며, 자유의지를 억압해서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의 모든 선택에 설득하거나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좋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거의 권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임에는 일체의 강압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오기 싫은 사람이 오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경우가 확인되면 우리는 그를 바로 돌려보냅니다.
어떤 모임이든, 행사든, 봉사든.. 자발적이지 않은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억지 참여나 봉사가 영혼을 억압하고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피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성령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영적 성장에 있어서 각자의 갈망을 약간 도와주는 정도이며 결코 앞에 서서 끌고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연스러운 시기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각종 모임과 집회에 눌려서 모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우리는 그들의 공포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모임은 그러한 모임과 전혀 다르며 일체의 긴장이나 경쟁이 없이 웃음과 기쁨과 자유함과 행복을 누리는 천국의 모임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3. 헤븐에는 권징이 있습니다.


개신교 교리에서 신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 중에 [교회의 표식]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표식은 1. 말씀선포 2. 성례실행 3. 권징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권징이 많이 행해졌었죠. 하지만 오늘날 권징을 실행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권징을 하면 기분이 나빠진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빠서 떠날 때에는 평소에 친밀한 교분이 있는 성도들과 같이 가는 경향이 있고 그것은 교회의 내분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권징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도로서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는데도 이를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것은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는 목사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흔한데, 그것은 이미 교회로서의 기본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한 곳에는 예수님께서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헤븐의 권징은 아주 단순합니다. 헤븐의 체제나 사역자들에 대한 불만이나..이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성도들 간의 사소한 갈등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은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의 문제라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사죄를 하고 문제가 끝이 납니다.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교회를 떠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축복하며 보냅니다.
우리는 결코 애매한 문제로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권면이라고 해서 사역자들이 권위적인 태도나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사죄하는 것이 성도님의 영혼과 영적성장에 유익하며 우리는 그것을 도울 뿐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아무도 함부로 거칠은 언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누군가 교회 안에서 혈기를 부리고 했다면 그분은 곧 부름을 받게 됩니다.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습니다. 여기엔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울 아름답게 보존해야합니다


4. 헤븐의 사역자들은 권위적이지 않습니다

헤븐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권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주가 명하시는 것을, 기쁘시게 여기는 것을 위하여 사역하고 조언하고 권면합니다. 거기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주의는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권위적인 자세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도 존중하고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그 인격을 존중해줍니다.

나는 성도들을 가족처럼 대합니다. 연세가 어린 친구들을 자녀처럼 대하고 연세가 있는 분들을 부모님처럼 여기며 존대합니다. 나보다 한 살만 많아도 누님처럼, 형님처럼 대합니다. 헤븐에서 사역자가 성도를 억압하거나 명령하거나 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5. 헤븐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헤븐에서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재능도 없고.. 그러한 어떤 사람도 차별받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하대하지 않습니다. 헤븐이 중시여기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수하며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가입니다. 그것만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헤븐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나,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헤븐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신앙연조가 길지만 열매가 부족한 이들도 있고, 헤븐의 메시지를 접한 지 짧은 시간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외적인 조건보다 오직 그의 열매를 중요시합니다.

6. 헤븐은 교제를 중요시합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사역자들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도 또래의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을 아주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 교제의 시간들을 기다립니다.

어려운 일이나 봉사가 필요할 때, 우리는 인원이 모자란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지나치게 많이 모여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아무도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는데도, 모두가 헤븐의 일이라면, 서로 같이 일하는 것이라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열심과 사랑이 어디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지만, 교회에서 오직 예수를 배우고 그 놀라우신 예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에게 빠지게 되며, 같이 예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서로 미워하면서 사랑이 식은 채로 삽니다. 나는 결혼식의 비유에서 이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여기 삼각형이 있습니다. 삼각형의 꼭대기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삼각형의 아래 두 끝에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대기에 게신 예수님과 가까워질수록 두 부부의 거리는 가까워지며 서로의 사랑은 깊어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대기에 계신 예수님과 연합된다면, 두 부부도 같이 연합됩니다.]


교회의 아름다움, 풍성함, 열매들은 오직 한 가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헤븐은 오직 교회에서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려고 합니다. 그것만이 헤븐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헤븐의 모든 열매의 원인입니다.


7. 헤븐의 사역자들은 평등합니다

사역에 있어서 질서가 있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역 자체는 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동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역자의 사례에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모두의 월급은 똑같습니다. 다른 수입이 있어서 조금 덜 받는 이도 있고 가난한 편이라 조금 더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봤자 몇 십만 원의 차이입니다. 담임목사인 나보다 조금 더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도서비, 사택비.. 그런 품목들은 없습니다.
헤븐의 모든 사역자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며 형제와 같고 가족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이는 것을 즐거워하며 같이 웃고 울며 기뻐합니다.

사역자들은 서로 몹시 친하고 사랑하며 같이 있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가족이나 형제들보다 더 친밀하게 지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전체가 같이 가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아무튼 같이 놀고 함께 하는 것을 서로 즐기는 것입니다.


8. 헤븐의 재정 상황은 아주 투명합니다

교회 재정의 부정은 최근 들어 많이 이슈가 되는 것 같습니다. 헤븐에는 시스템 자체가 투명해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헤븐은 돈에 대해서 깨끗합니다. 교회는 사역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고, 성도들은 하나님께 헌금한 것이지 목사에게 헌금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부흥했다면 그것은 복음의 아름다움 때문이지 사역자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9. 헤븐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헤븐인들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얼굴이 아주 밝고 환하고 항상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뚜렷이 구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 사람들은 지금, 현재 천국에서 사신다면 서요?]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나는 성도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다]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말하곤 합니다.
[내일이면 깨질 거에요. 내일은 더 행복할 테니까..]
사람들은 까르르 웃습니다.


수십 년 같이 살던 부부들이 마치 신혼을 사는 듯 서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문제도 여전히 있고 경제도 어렵고 직장이나 다른 가족들 간의 갈등이나.. 신앙을 핍박하는 이들이나.. 여러 문제들은 산재해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행복과 기쁨은 헤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주의 십자가 앞에 엎드러져 자신을 주님께 드린 사람. 그리고 주와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기에 세상의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며 좁은 길이며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헤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고 경험합니다. 우리는 그 기쁨이 천국에 갈 때 까지 이어지고.. 천국, 우리의 본향에서는 더 깊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헤븐 스타일에 대해서는 더 쓸 것이 많지만 더 자세하게 쓰자면 책 한권의 분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 헤븐 스타일은 내가 사라져도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사역을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입당예배는 코앞에 닥쳤고, 건축은 아주 소소한 하자 점검 정도 외에는 다 끝났습니다. 혹자들은 기쁘고 좋을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기쁨보다는 걱정 근심이 더 많습니다.
헤븐이 원흥에 교회를 건축한 것은 외적으로 크게 부흥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싫습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수 천 명 수 만 명의 교회가 차고 넘칩니다. 세상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많이 몰려오고 그리스도를 가르치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부흥이란 사람 많이 모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 넓은 길.. 유행하는 길은 안전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갈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도하셨겠지만.. 나는 이렇게 도시의 중심부에 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이곳이 가난한 지역인줄 알았더니 임대아파트는 두 개의 단지 뿐이고 다섯 단지가 일반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과연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교회는 성패는 간단합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들어올 때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의 집이 됩니다.


나의 애당초 계획은 폐공장과 같은 것을 구입하여 대강 수리해서 교회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찾아오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찾아오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지 그저 집 앞에 교회가 있으니까 오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구해도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화려하게 짓는 게 싫어서 대강 공장스타일로 예배당도 단층으로 허름하게 설계를 했는데.. 모든 시공사들이 일치하게 반대를 해서 결과적으로 싸게 지으려고 하다가 설계비만 몇 천만 원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교회인지 모르도록 십자가도 안 달고 공장처럼 지으려고 했는데, 이곳이 종교부지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초에 내 예상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외부 사람들이 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크게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고 놀기에 공간이 너무 좁아서 여유 있는 공간으로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지 않는데, 우리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여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수백 개의 접이식 의자를 접어서 구석에 세워두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교제를 했습니다. 다음 예배 때는 또 반대로 의자를 펴놓아야 했습니다. 아무튼 공간이 너무 좁았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에서 벗어나 그저 간섭받지않는 우리만의 자유롭고 독립된 공간에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건축이 끝났으니 우리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놓고 예배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최근에 많이 지쳤고 이제 몸이 많이 아프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입당 예배가 있고 10월에는 5일부터 30일까지 부흥회가 있습니다. 나는 몇 번 참석하지 못하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만큼은 갈 것입니다.
부흥이란 숫자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부흥이란 회복입니다. 인간에게 빼앗긴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의 회복입니다. 부흥이란 찢어진 심령위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찢겨진 심령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서 통곡하고, 심장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당분간 사역을 내려놓고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힘쓰며 오래 동안 쉬었던 글쓰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나의 체력과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연약합니다.
주님께서 너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고 내게 안식을 주신다면 그것은 내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수고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신다면, 나는 왜곡된 복음을 회복하고 하늘에 속한 성도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초 복음에 대한 글을 조금 쓰고 싶습니다. 쓰고 싶은 책의 목록은 50권이 넘지만.. 아주 일부만 쓸 수 있어도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은 전혀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한 동안 즐겁고.. 그리고 힘든 여행을 하였습니다. 이제 당분간 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헤븐이 오직 주를 사랑하며 주의 뜻을 이루는 도구..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헤븐 성도 여러분.. 목숨만큼..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