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교회 건축 이야기


2014.11.21.

 [글쓴이: 헤븐교회 설립자 정원]


우리는 20137월에 원흥지구의 종교 부지를 구매하였습니다. 완공되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건축의 과정들을 간단하게 나누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건축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몇 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로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검소하고 저렴하게 건축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축설계사에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기가 죽지 않게 설계를 해주세요. 절대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느낌이 들수 있도록 해주세요..]

실력이 있고 경험이 많은 설계사를 소개받기도 했으나 그분의 예술적이고 화려한 작품을 보고는 우리는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계약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화려하고 멋진 건물은 우리와 맞지 않았습니다.

나는 설교할 때 이런 메시지를 자주 전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평생을 검소하게, 노숙자처럼 사셨기 때문에 화려한 교회에서는 잘 적응을 못하십니다. 그래서 떠나시게 됩니다. 대신에 다른 영들, 세상의 영들이 오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들이 많이 있으면 그들이 부르짖을 때 주의 영이 임하시게 되고 교회는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주인인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편하게 올 수 있도록 건축되어야 하며 그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럭셔리한 교회로 꾸며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헤븐스타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건축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땅만 있으면 조립식으로 건축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교회의 외관이 너무 지저분해서 주위에서 민원으로 신고가 들어갈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컨테이너를 여러 개 가져다놓고 연결해서 교회를 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화려한 건물보다는 공장이나 창고같은 교회, 허름한 분위기의 교회가 헤븐의 분위기와도 맞고, 기도하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립식 건축, 컨테이너를 활용한 건축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방법들을 연구한 결과, 그것이 거의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든지, 남들이 하지 않는 튀는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있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건축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정신은 살려서 화려한 분위기의 재료는 쓰지 않으며 저렴하고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건축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보통 교회 건축을 화려하고 멋지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좀 더 많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아무리 건축을 한다고 해도 아무나 교회에 오도록 허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애당초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마음껏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헤븐에 오려면 아무리 초신자라고 해도, 일단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로 예배당을 채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목적에는 화려한 건축물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화려한 건축물은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육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입니다. 그러한 건축은 돈도 아깝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헤븐 스타일,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건물의 외형과 상관없이 오직 주를 갈망하고 알기 원하는 이들이 이 교회에 오기를 원했습니다.

검소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건축한다는 원칙은 쉬운 것 같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외로 어렵고 복잡했습니다. 이 기준에 맞추는 것을 좋아하는 시공사나 설계사를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랜 고생의 결과, 지금은 우리의 이상이나 기준에 적당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분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어서 주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만난 것이 우리에게도 감사한 일이고, 그분들도 우리와의 만남을 교회에서 돌아다니며 간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헤븐 건축에 있어서의 중요한 원칙은 건축헌금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나 권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신앙 스타일에서 아주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은 일체의 인위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 인간적인 계획, 인간적인 애씀이 많으면 교회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제한하고 방해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님의 인도하심과 감동이 올 때에 순종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 명령하거나 요구할 수 없으며 오직 순복할 뿐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건축을 돈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돈을 구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중직을 많이 세우고 그들에게서 돈을 걷기도 합니다. 건축헌금에 대한 설교와 강요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건축은 기도로 하는 것이며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복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건축헌금이니, 작정헌금이니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헤븐에 다니면서 건축헌금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신에 이런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것입니다. 건축헌금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헌금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헌금 많이 해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고..

 

우리 교회의 헌금은 거의 무명으로 행해집니다. 이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한 적은 없는데,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헌금을 얼마를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알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인간이 일체의 인위적인 방법을 버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주님이 그분의 일을 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하면 주님이 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 건축을 원하시면 우리가 순종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막힐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즉시로 그만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으며 주님이 하시라고 하면 하고 관두라고 하면 그만둡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어떤 일을 맡기실 때 돈부터 생각합니다. 주님이 [내가 너를 선교사로 부르겠다] 하고 감동을 주시면 흔히 생각하는 것이 [나는 돈이 없는데..]입니다. 이것은 우리 의식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대단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 맞는다면 우리는 돈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 맞는가, 인도하심이 맞는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더 집중을 해야 합니다. 방법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확인과 순복이 필요할 뿐입니다.

 

건축에 있어서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도와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건축의 여러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도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고 감동을 기다렸습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기도한 후에 움직였습니다.

 

나는 전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에 있었지만, 건축의 과정이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 잘 몰랐고, 어떤 계획이나 답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하면서 각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감동이 어떻게 오는지를 기도한 후에 나누도록 했습니다.

나는 원래 스타일이 어떤 일을 하든지 혼자 독단적으로 끌고 가는 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여럿이 모여서 기도하게 하고 의견을 묻고 들으며, 전체의 감동과 결집된 의사를 존중하는 편입니다. 헤븐의 건축에 있어서도 아주 적은 일부라도 반대하거나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마 추진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크게 환영하고 기뻐하며 기도하기를 즐기기에 추진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자체보다도, 이렇게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을 하고 웃고 떠들고 나누고, 그러면서 무엇인가를 배워간다는 것을 기뻐하였고 또한 교제를 즐거워하였습니다.

어떤 땅을 살 것인가, 어느 지역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조건을 우선시 할 것인가, 어디서 대출을 받을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떤 시공사와 설계사를 선택할 것인가.. 기도해야 할 문제들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면서 답을 찾았습니다.

항상 정답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감동을 받았다고 신이 나서 다 같이 나누었다가 그 결정의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어서 폐기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들 쿨하게 포기했습니다.

 

상황이 막히고 꼬이는 일이 여러번 있었지만 다들 그것을 즐겁고 재미있게 여겼지 실족하거나 낙심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그 과정들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고 그 과정들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건축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실족할 상황에서 대신에 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의견도 묵살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견이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영과 함께라면.. 주의 인도하심 안에 있다면.. 인간의 계획과 욕심, 인위적인 방식들이 없다면.. 건축 뿐만 아니라.. 선교도.. 핍박도.. 순교도. 행복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그 영의 흐름, 인도하심 안에 있다면 말입니다. 스데반도 기쁨이 가득한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면서 최근에 지난 발걸음들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지난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가?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런 계획도 비전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께 순종해야 하며 주님을 사모해야 하지 위대한 꿈이나 비전이나.. 이런 것은 인간적인 욕심이 들어갈 수 있으니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나도 아무런 꿈이 없이 그저 한걸음씩 걸어왔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실망의 결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마 꿈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꿈이라면, 그것은 항상 주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나누고 싶은 것뿐입니다.

 

인도하심에 대하여 최근에 계속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 왜 그러십니까? 나는 계속 물으며 기도했습니다.

서서히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흥]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있었을 뿐입니다. 중간 중간의 감동을 순종했을 뿐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주님은 한 걸음씩 이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부흥]이라는 단어에서 흔히 숫자적인 부흥을 생각합니다.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행사를 계획하고, 그 집회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강요하고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많이 모이고 인간이 많이 설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인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 쪽에는 한 사람만이 있었고 바알과 아세라 쪽에는 850명이 있었습니다. 850명 쪽이 부흥일까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늘에서 불이 임했습니다. 그 순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도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부흥입니다. 부흥이란 사람의 나타남, 사람의 열심 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임하심입니다. 사람들이 애쓰고 움직여봤자 문제만 생기고 사고만 치고 육체의 열매가 있을 뿐이지만, 주의 영이 임하실 때 거기에는 거룩함과 영광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외치며 회개하고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집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사람의 마음은 촛밀처럼 녹아집니다. 사람들은 그 영광앞에 엎드러집니다. 그 때 사람들은 자기의 죄악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때 그 영광에 사로잡혀 세상욕망과 자아의 욕망을 잃어버립니다.

 

190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부흥이 있었습니다. 1907년에 평양 대 부흥이 있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인도, 호주, 노르웨이 등..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 시작점은 1904년의 웨일즈 부흥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웨일즈 지역에서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 영광이 그 지역을 폭격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전국에, 전 세계에 퍼지면서 비슷한 부흥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웨일즈 부흥의 주역은 당시 불과 27세인 에반 로버츠와 그 또래의 친구들, 청년들이었습니다. 자매들도 찬양으로, 메시지로, 간증으로 부흥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들은 20대였습니다.

10대의 어린 아이들도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지난 주일에 선포했을 때, 헤븐 스쿨의 아이들은 거의 아수라장같이 울면서 통곡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흥의 불길, 갈망들이 일어나서 가슴이 벅차서 견딜 수 없다고 간증들을 하였습니다.

 

주일에 한번 아무리 깊은 감동에 사로잡혀도 그것을 다시 유지하고 일주일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동안 집중적으로 계속 기도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뜨문뜨문 하는 것보다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강력하고 좋은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에는 기도의 불과 찬양의 불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서 철야기도회를 하는 곳이 많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철야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기도의 열기를 되찾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항상 기도의 불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잠이 들고, 깨어서 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중심의 복음이 아닌 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사람이 말씀에 굴복하여 낮아지고, 인위적인 것이 제거되고, 주를 방해하는 죄악들이 토해지고, 순수한 헌신과 갈망과 굴복이 이루어질 때 성령은 강력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책을 쓰면서.. 나는 주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역을 할 때도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책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오직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고 또 전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예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계속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들은 오래동안 굶주린 사람들 같았습니다. 예배 시간은 항상 눈물의 홍수였습니다. 그들은 오매불망 항상 예배 시간을 기다립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을 몹시 아쉬워합니다.

 

헤븐에서는 기도의 갈망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기도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공간이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공간이 없습니다.

건축을 하면서 좀 더 공간이 확보되는 날을 헤븐의 성도들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와서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다가 잘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그들에게는 기도의 소원, 예수 소원, 성령에 사로잡히는 소원들이 점점 더 증가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헤븐교회를 시작하기전보다 훨씬 더 놀라운 간증들, 풍성함의 열매들, 사람들의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항상 놀라우며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오직 순종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사모하고 기도합니다. 웨일즈 부흥과 같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다시 이 땅에 일어나기를 말입니다. 한 두 교회가 부흥하고 커지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성령의 놀라우신 임재가 이 땅에 강물처럼 임하고, 그 영광의 바다 속에 수 많은 성도들이 잠기게 되고.. 그래서 그 소문들이 퍼져나가고, 그리고 도처에서 여기 저기에서 많은 부흥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통일이 되고.. 그리고 온 세계로.. 열방으로 나아가는 부흥의 불길들.. 이것이 번지기를 기도합니다.

 

건축은 부흥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마음껏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있고, 아래층에서 화를 내며 따지러 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뛰면서 찬양할 수 있고, 밤이 깊도록 부르짖고 외치며, 한편에서는 웃음과 장난과 교제를 나누고 한편에서는 휴식을 취하고 한편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주님의 임재와 풍성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그 시간들을 기다리고 사모합니다.

 

사역자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성도들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사역자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며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 눈물, 기도, 헌신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임하시며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면, 나와 헤븐은 사역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사역자 한 사람이 부흥되고 일어나면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늙은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시골에 휴양차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지쳐서 휴식이 필요하였습니다. 잠시 머무른 곳에서 그를 알아본 시골 목사님이 부흥회를 요청했습니다.

부흥사 목사님은 거절했습니다. 너무 약하고 힘든 상태애서 집회를 인도할 수 없다고.. 그리고 항상 집회 전에 많은 시간을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집회에 서는데 자기는 거의 기도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지만 강권에 의하여 목사님은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놀라운 부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회개의 눈물을 강물처럼 흘렸고 집회가 계속될수록 회심자는 늘었습니다.

풍성한 열매와 함께 집회는 끝났지만 정작 당사자 목사님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의 부흥은 많은 기도 준비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이 놀라운 역사는 무엇인가? 성령은 기도 없이도 임하시는가?] 목사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초청한 목사님이 부흥사 목사님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한 군데 방문할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를 따라가자 허름한 오두막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초라한 방안에서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여인이 그곳에 누워있었습니다. 초청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중한 병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누운 채로 이 마을의 부흥을 위해서 지난 10년간 기도했습니다. 오늘의 부흥은 이 여인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부흥사 목사님의 고민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은 진정 기도를 들으시고 부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부흥에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짐을 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헤븐의 많은 사람들은 부흥을 위한 눈물의 제물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 땅에, 나라에, 온 교회에.. 부흥이 오도록 우리는 기도할 것입니다.

 

성령이여.. 영광의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당신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교회의 주인입니다.당신의 소유를 되찾으시옵소서.. 교회 안에서 당신을 제한하고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성령님.. 당신만이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오셔서 당신의 일을 하시옵소서..

안나처럼.. 시므온처럼 기도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남은 여생을 기도로 보내는 이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무릎으로 사는 사람들.. 기도로, 눈물로 사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의 불이 대한민국에 타오르도록..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우리의 가정들이 부흥되고 타오르는 불길에 사로잡히도록.. 우리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옵소서..

거룩한 불.. 영광의 불.. 능력의 불이여. 오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헤븐의 시작도, 건축의 시작도..

당신께서 임하시는 작은 한 걸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부흥을 기도합니다.

숫자의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심령에 임하시는 부흥..

주께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증가되는 부흥..

하나님의 사람들.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들이 일어나는 부흥을 사모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할렐루야!!